2016.9.20_이적, 5집, 고독의 의미

2010년 <사랑>도 정말 좋아했는데, 이 앨범도 정말 좋다.


감성 싱어송라이터 이적의 귀환, 정규 5집 앨범 <고독의 의미>

최고의 싱어송라이터 이적이 정규 5집을 들고 돌아왔다. 정규앨범으로는 2010년의 <사랑> 앨범 이후 3년만이다. 하지만 그 사이가 공백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워낙 다양한 음악활동으로 대중과의 접점을 넓혀왔기 때문이다. ‘무한도전 서해안 가요제’를 통해 유재석과 ‘처진 달팽이’를 결성, <압구정 날라리>와 <말하는 대로>를 히트시켰고,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의 음악감독을 맡았으며, 아이유에게 <삼촌>, 존박에게 <철부지>를 선사하는 등, 재능 있는 후배와의 협업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또한 슈퍼스타K를 비롯한 수많은 오디션 프로에서 그의 명곡들이 재조명되어온 시간이기도 하다. 허각이 <하늘을 달리다>, 버스커버스커가 <정류장>, 박시환이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를 부르며 원곡이 다시 차트 정상에 오르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했고, 심지어 <나는 가수다> 시즌1, 2를 통해 9명의 기성가수들이 그의 노래들을 선택해 부르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여기에 다양한 방송, 광고, 공연활동들이 덧붙여져, 이제 그 어느 때보다 대중들이 이적의 새 음악을 궁금해 하며 기다리는 시기가 왔다.

새 앨범에서 가장 먼저 놀랍게 느껴지는 것은 역시 송라이팅이다. 매우 세련되어 있으면서 틀에 박히지 않은 곡의 진행과 멜로디가 압권이다. 신선함과 원숙함을 동시에 갖고 있달까. 이적은 2년여에 걸쳐 60여곡을 썼고, 그 중에서 20여곡을 1차적으로 선별, 편곡 작업을 하며 최종 10곡으로 추리는 과정을 거쳤다고 했다. “상투적으로 들리는 곡은 아무리 그럴 듯해도 모두 버렸다. 곡 자체가 펄떡펄떡 살아있어서 수없이 반복해도 힘이 떨어지지 않는 곡만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가사는 그 곡들에서 자연스럽게 배어나왔다. 쉬운 우리말로 심오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그의 가사의 매력이 더욱 진해졌다. 앨범 제목이 <고독의 의미>. 가슴 한 구석이 뻥 뚫려있는 사람들에게 때로는 슬픈 사랑이야기로, 때로는 뜨거운 인생이야기로 다가오는 이적의 가사는 역시 일품이다.

앨범 전반을 아우르는 사운드 역시 주목할 만하다. 3집, 4집에서 완전한 어쿠스틱 사운드를 구현했던 그는, 이번 앨범을 통해 어쿠스틱을 기본으로 그것을 둘러싼 절묘한 효과음과 디지털사운드를 배치,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창출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조화롭게 섞인 이번 앨범의 사운드는 혁신적이면서도 안정적이고, 놀랍도록 감성이 풍부하다. 10년간 함께 음악을 해 온 공동 편곡자 양시온도 제 역할을 톡톡히 했고, 이적의 연주를 뒷받침해 준 임헌일, 이주한, 정재일, 타이거JK, 정인의 조력도 큰 힘이 되었다. 그간 가요 앨범에서 듣기 힘들었던 풍부한 질감의 사운드는 두고두고 화제가 될 듯하다. 덧붙여 앨범 아트워크 역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데, 미술가 추종완 작가의 작품들을 디자이너 장성은이 자켓의 형식으로 담아냈다. 이적의 음악과 만나 일으키는 시너지가 대단하다.

예전에 이적은 인터뷰에서 ‘시간을 견디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직 젊은 뮤지션이지만 그 바람은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유행을 타지 않는 음악, 시적인 가사, 말하듯 읊조리다 폭발적으로 터지는 가창력. 그의 노래는 우리의 가슴에 늘 깊이 새겨져왔다. 새 앨범 <고독의 의미>는 그런 경력의 이적이 내놓길 기다려왔던 가장 이상적인 결과물이다. ‘최신작이 최고작’, ‘커리어 최고의 앨범’이라는 찬사는 과장이 아닌 것 같다.

<수록곡 소개>

1.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묵직하게 깔리는 피아노 사이로 이적의 목소리가 쓸쓸하게 흐르는 노래. 어디선가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클래시컬한 멜로디가 아름다워 간명한 구성임에도 감정의 파도가 극적으로 넘실댄다. 사랑하는 이에게 버려진 이의 상실감, 자책, 원망을 담은 가사를 쓰며 이적은 놀이공원에 버려진 아이의 얼굴을 떠올렸다고 한다. 올 겨울을 넘어 아주 오래 불리게 될 듯한 처연한 사랑의 노래.

2. 누가 있나요
광활한 황야를 홀로 걷는 것 같은 막막함, 인생의 길을 걸을 때의 외로움과 불안을 담은 노래. 스케일이 큰 사운드 역시 그런 공간을 음악적으로 형상화해낸다. 이번 앨범의 기념비적 사운드 디자인 중 한 곡. 이적의 애원하고 절규하는 듯한 목소리가 가슴에 맺힌다.

3. 사랑이 뭐길래 feat. Tiger JK
록의 작법과 일렉트로닉의 문법이 절묘하게 조화된 파워 트랙. 점점 고조되는 A파트에서 클럽뮤직 스타일의 B파트로의 전환이 기막히다. 최고의 랩퍼 타이거JK의 피처링도 눈부신데, 특유의 개성 만점 랩을 통해 곡의 색깔을 다양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바로 지금’의 음악적 조류를 이적이 어떻게 자기 스타일로 능수능란하게 재편하는지 즐길 수 있는 곡.

4. 이십년이 지난 뒤
마치 비틀즈의 노래를 듣는 듯한 느낌으로, 베이스 없이 피아노와 드럼이 과감히 끌어가는 소박한 편곡의 노래. 마흔이 된 이적이 지나 온 20년을 돌이켜보며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서 상념에 젖는 가사. 담담히 노래하지만 듣고 있으면 인생이 영화처럼 지나가며 가슴이 아련해진다.

5. 비포 선라이즈 duet with 정인
이적이 가장 좋아하는 사랑영화라는 <비포 선라이즈>의 느낌을 담은 노래. 언젠가 사랑을 나눈 두 사람이 서로를 못내 그리워하지만 현재 함께 할 수 없음을 애타게 노래한다. 조금은 성숙한 감성을 담은 독특한 듀엣곡이다. 남자 키(key)의 노래에 합류해 초고음을 쏟아내는 정인의 보컬 또한 놀라운 곡. 남녀가 주고받다 함께 섞이는 3절에서 에너지가 절정에 이른다. 80년대 팝 발라드를 표방한 사운드 또한 무릎을 치게 하는 매력.

6. 뜨거운 것이 좋아
더운 여름을 정면돌파하자는 기개를 담은 청량한 록 음악. 이적은 록 페스티벌 현장을 떠올리며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단순한 편성이지만 독특한 곡 진행에 들을수록 웃음이 머금어지는 보물 트랙.

7. 뭐가 보여
앨범 후반으로 갈수록 더욱 진지하고 깊이 있는 음악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 곡이 대표적이다. 영국 록 밴드를 연상케 하는 곡과 각종 사운드 이펙트 등이 조화되어 기존 한국 음반에서 듣기 힘들었던 지점에 도달한다. 상처입어 자꾸만 스스로를 닫으려 하는 이의 독백.

8. 숨바꼭질
장난기 있는 리프로 시작하여 신나게 펼쳐지는 드라이브감 넘치는 곡. 댄서블한 비트와 록 음악이 만나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떠난 연인이 마치 숨바꼭질할 때처럼 다시 나타났으면 하고 바라는, 어린 아이 같지만 그래서 더욱 슬픈 가사의 노래.

9. 병
앨범에서 가장 실험적인 곡. 누구나 가진 은밀한 욕망에 대한 노래. 패닉 시절을 연상시키는 곡과 가사, 전위적인 편곡이 아찔한 쾌감을 선사한다. 한국 대중음악의 외연을 또 한번 확장시키는 야심작.

10. 고독의 의미
앨범 타이틀과 동명의 노래. 일렉트릭 기타 아르페지오 위에 쓸쓸히 얹힌 목소리. 오래된 관계, 그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에 대한 철학적인 가사다. 고독이란 것은 반드시 혼자 있을 때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듯. 앨범의 문을 닫는 곡으로 소품이지만 울림이 큰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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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비트 리뷰 | 글 : 김윤하]

앨범을 손으로 쓸어보면 지난 20년의 결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가로는 1995년 패닉으로 데뷔한 이후 2007년 ‘다행이다’로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한 그의 음악가로서의 세월, 세로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성실한 리스너로서 보내온 세월의 흔적이다. 3집 [나무로 만든 노래] 이후의 안정감을 조금 더 여유롭게 즐기고 싶어하지 않을까 생각한 이들이라면 따끔할 부분이 꽤 많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과 ‘병’ 같은 노래를 한 앨범 안에서 소화할 수 있는 이는 의외로 흔치 않다. 놀라울 정도의 마스터피스라고 하긴 어렵지만 스스로 쌓아 올린 발판 위에서 자신감 있게 지휘봉을 휘두르는 그의 모습이 결코 만만해 보이지도 않는 그런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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