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5.6_어린이에게 꿈과 희망 혹은 절망을 가르치는 어른

1. 어제 어린이 날이어서 갑자기 이런 생각을 했고요,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라는 생각과 더불어, 특히 주변에 저 보다 어린 사람들이 조언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잦아지면서,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2. 답 해주신 모든 분들도 저와 같이, 어린이들이 꿈과 희망도 가져야하고 혹독한 현실도 결국에는 깨달아야 한다라는 생각을 한다는 걸 확인했어요. 둘을 균형감있게 갖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거요.
3. 그런데 문제는 그 적절한 수준이 무엇인가 하는 것인데, 저도 어떤 상황에서 꿈과 희망을 갖고 어떤 상황에서 무서운 현실을 깨닫고 적절히 판을 접느냐, 하는데에 대한 분별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4. 저는 지극히 결과론 적인 사람이라, 꿈과 희망을 가졌더니 일이 잘 되었다면 꿈과 희망을 가진 게 잘 한 거고 적당히 현실의 혹독함에 굴복했더니 일이 잘 풀렸다하면 또 그게 잘 한 거고, 뭐 대강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이건 저의 경우가 그렇다는 거고요.

5. 혹독한 현실은 스스로 깨닫게 되니 꿈과 희망을 심어주자는 의견에 대해서 일부 동의하는 것은, ‘혹독하다’라는 게 상대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서요. 뭔가 내가 아무리 작정하고 ‘혹독힌 현실을 알려주겠다 이 자식!’해도 강한 놈은 하나도 안 혹독하다 느낄거고. ‘혹독한 현실’에 대한 인식은 스스로에게 달린 거겠구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고요.
6. 판단을 본인이 할 수 있도록 많은 정보에 노출시키자는 생각에 대해서는, 어떤 자극에 대한 판단이 선험적인 것인가 하는 포인트를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다면 정보에 접근하는 길을 가르쳐주는 과정 자체가 스스로 판단하는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서.
7. 더 어린 어린이와 덜 어린 어린이 사이의 구분은, 덜 어린 어린이는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다는 건데, 뭔가 처음으로 절망을 경험해야 하는 그 어린이가 가여운 생각이 드네 갑자기ㅠㅠ
8. 믿음은 꿈과 희망에 관한 믿음인지 혹독한 현실에 대한 믿음인지? 전자라고 생각하지만.
9. 꿈과 희망이 직업과 동일하지 않다는 생각에는 매우 동의하고요. 어떤 가치나 목적의식을 분명하게 가질 수 있도록 어린이를 돕는 게 어른이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0. 이제 버스에서 내려야되는데, 생각한 것들을 종합하면, 꿈과 희망, 혹독한 현실 사이의 균형감을 갖는 어린이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어떤 상황을 혹독하다 느끼는 지에 대한 역치를 높게 갖는 게 중요한 것 같고 (극단적인 예로 Gatsby), 상황이 혹독하게 느껴질 때 혹독한 상황을 같이 겪고 있는 다른 사람도 한 번 돌아보면서, 자기가 꿈과 희망의 증거가 되보이겠다 하는 그런 의지를 가진 사람이 되면 참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듦
11. 여전히 how to 에 대한 답은 ‘?’. 나부터도 안 그러므로, 어린이에게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모르겠다 에라잇. 벨 누르고 내리자.

손바닥안에서 올림 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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