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6.2013_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쓰러지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다. 사실 며칠전에 꿈 속에 할머니가 나오셨는데 좋운 기분의 꿈은 아니었다. 어디 말하지도 못하고 걱정하면서 하루를 보냈는데 다행히 별말씀없으셔서 다행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날부터 몸이 안 좋으셨는데 마침 가족들이 다 모인 그 자리에서 그렇에 쓰러지신 것이다. 그게 마치 내 탓인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병실로 옮기셔서 가보니 할머니께서 승호랑 내 손을 잡으시면서 “방학이라 온다그래서 올 줄 알고 기다렸지…”하시는 거다. 방학 때 벌써 2번이나 다녀와서 별 생각 없었는데 그 말씀을 들으니 더 죄송했다. 지은이처럼 애교많고 표현잘하는 손녀가 아니라 그리 귀이 여기시지 않을거라 생각했었는데.

암튼 그렇게 맘이 안 좋아서 하루저녁 내가 병실을 지키기로 했다. 도착했더니 할머니보다 할아버지가 더 아파보이셨다. 병원앞에서 사간 도넛이랑 주먹밥을 꺼내서 할아버지랑 같이 먹으니까 그제서야 할아버지가 좀 웃으시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셨다. 주먹밥이 너무 볼품없는 모양이라 웃음이 터졌다ㅋㅋ

며칠전에 할아버지께 이메일을 보냈다. 지난번에 스마트폰으로 메일보내는 법을 가르쳐드렸던 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날따라 버스가 안 와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의도랑은 다르게 진지한 얘기를 길게 썼다. 요즘 나는 요런요런 생각을 하는데 겁도나지만 잘하고 있으니 걱정마시라 라고 썼는데 쓰고보니 의도는… 할아버지 제 편이 되주세요 였다ㅋㅋㅋ 며칠뒤에 문자로 답이 왔는데; 네가 믿는대로 하거라~ 다정하지만 그렇게 짧게 답장이 왔다.

4인실로 옮기고 나서부터 티비가 없으셔서 꼬박꼬박 챙겨보시는 아침 드라마와 저녁 드라마를 못 보셨을 것 같아 노트북으로 보여드리고 나는 나와서 저녁을 ㅓ먹었다.

아프시다는데 나도 간호사도 딱히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진통제를 받는 것 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은… 치료제도 딱히 없으니 본인이 정말 괴로운 병이다. 그래도 안마를 해드리니 그나마 편하게 잠이 드셨다.

우리 할머니는 멋진 남편에 자녀도 많고 손자손녀도 열명도 넘고 다복하시지만 15년 전 쯤 부터 서울의 대학 병원 투어를 하고 계신다. 초등학생때쯤은 경희의료원에 갔던 것 같고 그 다음에는 아산병원, 한양대병원도 갔던 것 같고 또 아산병원, 이번엔 건대병원까지. 올 봄에 다치신 다리 때문에 이제는 수영도 자전거도 못 타신다. 그래서 매번 엄마이모삼촌들이 시골에 가면 친구분들이랑 자전거 타고 놀러가시던 강가에 드라이브를 가자고 하신다. 할아버지가 본인 게이트볼 치러 다니시느라고 이제는 잘 안 데려다 주신다며ㅋㅋㅋ 나도 얼른 운전을 잘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암튼 안 아픈 게 최고라며 ㅊㅊㄱ랑 얘기하다 잠이 들었다. 할머니가 화장실을 가시려면 내가 일어나야 하니까 할머니께 저 꼭 깨우시라고 당부했지만… 역시나 안 깨우실 것 같았다. 근데 신기하게 눈이 딱 떠져서 화장실 모셔다 드렸을 때 넘 뿌듯.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한 번 놓쳤음.

자다가 앞 침상에 계시는 할머니가 막 소리지르시고 그래서 진짜 공포스러웠다. 사람이 몸이 아프고 점점 정신이 쇠약해지는구나 싶었다. 무서워서 이불을 뒤짚어쓰고 잤다.

병원은 아침이 7시에 나온다. 이 시간에 밥을 먹다니… 할머니가 꼭 먹으라고 하셔서 같이 먹었다. 아침에 간단한 시술을 한다고 어제 밤부터 간호사들이 당부를 하고 가가지고 마음이 바빠서 나도 샤워하고 학교 가야되니까 막 뛰어다녔다. 근데 결국 나 나올때까지도 시술준비가 안 되가지고 못 보고 나왔다. 의사선생님이 하라는대로 해야지 뭐.

초췌한 당직 의사의 모습과 아프다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 회진도는 노련한 의사와 그 뒤에 새끼의사들을 보며 결국 저들도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 엄청난 감정노동을 하는구나 싶었다. 결국 노련한 의사라는 것은 의술이 뛰어난 것 뿐 아니라 의사라은 직업의식과 개인의 감정을 잘 분리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직업도 그런 것 같다. 직업은 그냥 직업일 뿐. 그러니까 자기 삶의 완성도와 삶의 권태로움을 어떻게 다룰까 그리고 어떻게 먹고 살까 하는 기본적인 물음의 한 가지 답일뿐이다.

말이 길어졌다. 일박이일 할머니 병실 간호 담당으로 느낀 점이다. 다만 다른 조용한 침상에 비해 끊임없이 자식들이며 친척들이며 왔다갔다 하는 곳이 우리 할머니 침상이라 다행이라는 마음뿐.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른 환자분들한테 친절하게 대하랴고 했다. 삶의 모든 일들이 자신의 선택의 결과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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