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2013_조지 오웰의 조언. 나쁜 글을 쓰지 않기 위해 피해야 할 것들

조지 오웰의 조언. 나쁜 글을 쓰지 않기 위해 피해야 할 것들

  1. 익히 봐왔던 비유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2. 짧은 단어를 쓸 수 있을 때는 절대 긴 단어를 쓰지 않는다.
  3. 빼도 지장이 없는 단어가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뺀다.
  4. 능동태를 쓸 수 있는데도 수동태를 쓰는 경우는 절대 없도록 한다.
  5. 외래어나 과학 용어나 전문용어는 그에 대응하는 일상어가 있다면 절대 쓰지 않는다.
  6. 너무 황당한 표현을 하게 되느니 이상의 원칙을 깬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정치와 영어’ 중 글쓰기 원칙

조지 오웰의 에세이 전작 중 일부를 옮긴 ‘나는 왜 쓰는가’는 글쓰기에 대한 제대로 된 참고서라 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 글을 써야 하는 사람 누구나 봐야 할 책입니다. 조지 오웰의 글쓰기 원칙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이런 원칙들은 기본처럼 들리며 실제로 그렇기도 하지만, 지금 유행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 데 적응해온 사람에게는 엄청난 태도 변화를 요구한다.”

글을 쓴다는 것이 모두의 숙제가 되어가고 있는 요즘, 유홍준의 글쓰기에 이어 추천합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의미가 단어를 택하도록 해야지 그 반대가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산문의 경우, 단어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단어에 굴복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대상에 대해 생각할 경우 먼저 단어로 표현하지 말고 생각부터 해보자. 그런 다음 머릿속에 그려본 것을 묘사하고 싶다면, 거기에 맞을 듯한 정확한 단어를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추상적인 무언가를 생각할 경우엔 애초부터 단어를 선택하는 쪽에 끌리기가 더 쉽다.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기존의 표현법이 마구 밀려들어 대신 작업을 해버릴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의미가 흐려지거나, 심지어 바뀌어버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니 가능한 한 단어 사용을 미루고서 심상이나 감각을 이용하여 전하고자 하는 뜻을 최대한 분명하게 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지 싶다. 그런 다음 뜻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표현을 택할 수 있을 것이고(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 반대로 자신이 택한 낱말들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인상을 줄 것인지 판단해도 좋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다룬 문제는 언어의 문학적 사용에 대한 것이 아니다. 생각을 숨기거나 막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언어에 대해서만 다루어본 것이다. …(중략)… 자신이 쓰는 영어(언어)를 간결하게 하면, 가장 우매한 통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불가피한 관용어를 쓸 수 없으며, 어리석은 표현을 쓰면 그 어리석음이 스스로에게도 분명히 드러나 보인다.

정치적 언어는 거짓을 사실처럼 만들고 살인을 존중할 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순전한 헛소리를 그럴듯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고안된다(그리고 차이는 있어도 보수당에서부터 무정부주의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당이 그렇게 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단번에 다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습관은 바꿀 수 있으며, 충분히 조롱을 퍼부어준다면 이따금 진부하고 무용한 관용구를(굿홧발, 아킬레스건, 온상, 용광로, 시금석, 불지옥 등과 같은 언어 쓰레기들을) 본래 자리인 쓰레기통으로 보낼 수도 있다.”

“과장된 문체는 그 자체로 일종의 완곡어법이다. 사실에다 보드라운 눈을 뿌리듯 라틴어를 잔뜩 쓰면 요지는 흐려져버리고 세부는 다 덮여버린다.

명료한 언어의 대적은 위선이다. 진짜 목적과 겉으로 내세우는 목적이 다를 경우, 사람은 거의 본능적으로 긴 단어와 진부한 숙어에 의존하게 된다. 마치 오징어가 먹물을 뿜어대듯 말이다.

우리 시대에는 ‘정치와 거리를 두는’ 일 같은 건 있을 수 없다. 모든 문제가 정치 문제이며, 정치란 본래 거짓과 얼버무리기, 어리석음, 반목, 정신분열증의 집합체인 것이다. 그러니 전반적인 분위기가 좋지 않을 경우 언어는 수난을 당하게 된다.

검증할 만한 자료를 들고서 하는 추측은 아니지만 나는 독일어, 러시아어, 이탈리아어가 지난 10년이나 15년 사이 독재정권 때문에 상당히 타락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생각이 언어를 타락시킨다면, 언어 또한 생각을 타락시킬 수 있다. 부적절한 어법은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관습과 모방에 의해 퍼져나갈 수 있다. 내가 거론하고 있는 타락한 언어는 어떤 면에서는 대단히 편리한 것이다. ‘정당화할 수 없는 것도 아닌 가정’, ‘바랄 만한 여지가 많다’, ‘유익한 목적에 봉사하지 못한다’, ‘마땅히 염두에 두면 좋을 고려 사항’ 같은 표현들은 언제나 손닿는 자리에 놓여 있는 아스피린 한 갑처럼 끊임없는 유혹이 된다. 이 에세이를 다시 훑어보기만 해도, 내가 저항하고자 하는 바로 그 잘못들을 내가 거듭해서 범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게 분명하다.”

(Acase 홈페이지에서 보시려면 http://wp.me/p3kx22-qi)

출처: <나는 왜 쓰는가>, 조지오웰, 한겨레 출판, p.274-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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