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1.2013_영화,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

올해의 서른 한 번째 영화, The Great Gatsby

“바즈 로만은 나와 다른 책을 읽었는가?” (★★★)

원작이 가지는 의미를 하나도 살리지 못한 슬픈 영화. 다만 볼거리와 배우들의 연기가 압권이었던 영화였다.

이동진평론가는 원작의 의미를 이렇게 평하기도 했는데

“… 위대한 개츠비는 삶에 있어서 불확실하거나 아니면 실제로 있는지도 모르는 의미 (데이지)에 대해서 자기의 삶의 모든 것을 걸고 전력투구 하는 한 남자가 겪는 딜레마, 비극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그것을 한 남자의 순정으로 그리다보니…”

가장 좋아하는 소설 5권 (The Reader, 삼국지, Proud and Prejudice, 광염소나타) 주저없이 꼽아왔던 피츠 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가 영화로 개봉했다.

건단히 소설과 비교를 하자면

1. 닉이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지 않은 것 
2. 개츠비의 죽음이 구체화되고 극적으로 그려진 것

이 별로였고

1. 디카프리오의 탁월한 해석력과 연기력
2. 중간중간 소설의 대사가 타이핑 된 것
3. 감독의 화면 연출력; 극 초반 화면 전환 속도, 화면의 색채
4. 극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ost

가 좋았다.

소설에서 닉이개츠비에게 거리를 둠으로써 나오는 효과 -나는 개츠비의 모순된 삶이 갖는 비극성이 강조된다고 생각한다.-가 사라진 것이 무척 아쉽다. 그의 비밀이 개츠비 본인의 입에서 나오는 것 역시 소설에서 처럼 죽음 이후에 친부의 등장으로 해소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이는 피츠 제럴드와 바즈 루어만 (물랑루즈, 로미오와줄리엣의 감독)의 연출 특성의 차이인 것 같다. 피츠 제럴드는 그렇게 낭만적이고 압축적이고 극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할 마음이 없었던 것 같고 나는 그것이 더 맘에 든다.

그렇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 10/10이다. 디카프리오는 이제 정말 인물을 남기는 배우가 되었고, 캐리 멀리건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그러나 동시에 너무 약해서 위험한 여자가 되었다. 소설을 읽을 때 나는 데이지를 경멸하기만 했지만 영화 속 데이지는 경멸스러움 마저도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내가 개츠비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개츠비 처럼 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미련한 삶의 방식이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정해진 것 같았다. 개츠비가 말했듯이 그는 하늘의 별과 같아야 하는 사람이고, 나도 그렇다. 그가 과거의 한 줄기 영광에 집착하듯 나 역시 그 때와 같아 지기를 희망하며 기준삼은 시기가 있다. 그는 속물적인 사람들에게로 섞였지만 누구보다 순수하게 꿈을 쫓는 과정일뿐이고, 나도 그런 사람이다.

사실 소설을 읽었을 때 나는 데이지가 사랑하는 여자라기 보다는 마음속에 품는 절대적인 꿈의 은유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누구나 그를 위해 미련해질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 근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더라. 그래서 신기했고, 그래서 내 자신이 누군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

데이지는 개츠비의 그런 순수한 사랑을 받을만한 값어치가 있는 여자가 아님이 밝혀졌지만 그 값은 오직 개츠비만 매길 수 있는 것; 그래서 나는 기꺼이 미련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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