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7.2013_MBK Partners 김병주회장 인터뷰 (2010. 중앙일보)

김병주회장 인터뷰 (2010. 중앙일보)

 

김병주(47·사진) MBK파트너스 회장이 아시아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한국의 ‘토종 사모펀드’라는 기치를 들고 2005년 설립한 MBK파트너스는 5년이 채 안 돼 37억 달러(4조3000억원)의 자금을 조성해 14건에 73억 달러(8조5000억원)의 투자를 성사시켰다. 동북아시아 최대 규모다.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은 “한국의 MBK파트너스는 최초의 진정한 아시아 기반의 사모펀드”라고 평가했다. 김 회장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와중에서도 수도권 최대의 종합유선방송사업자(MOS)인 C&M과 일본의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을 인수했다. 지난해 말에는 중국 최대의 물처리 업체인 GSEI를 사들였고, 이번에 금호렌터카 딜까지 성사시켰다. 기자는 6년 전에도 김 회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세계 최대의 사모펀드인 미국 칼라일의 아시아 회장으로 한국에 들어와 한미은행을 인수한 뒤였다. 그는 당시 40대 초반으로 한국어에 다소 어눌하고 매사에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우리말을 완벽하게 구사하며 자기의 소신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MBK파트너스가 단숨에 동북아 최대의 사모펀드로 부상한 비결은 무엇인가.
금융은 결국 사람 장사다. 칼라일 등에서 풍부하게 경험을 쌓은 인재들을 영입했다. 그리고 철저히 현지화 전략을 폈다. 한국 본사에는 모두 한국 사람을 채용했고, 일본과 중국에는 현지인을 썼다. 우리 직원들은 충분한 ‘트랙 레코드(과거 실적)’를 확보하고 있어 고객이 신뢰한다. 우리는 선진 금융기법에 아시아적 정서를 접목시켰다. 기업을 인수한 뒤 인력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 거꾸로 주식이나 스톡옵션을 나눠줘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도록 한다. 임직원이 신나게 일해야 기업 가치도 쑥쑥 올라간다.”

-잘나가던 칼라일을 박차고 나와 한국에 사모펀드를 만든 이유는.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와 뿌리를 내리고 일해야겠다고 늘 생각했다. 더구나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경험을 쌓을수록 앞으로 세계 경제의 중심은 아시아, 특히 동북아가 될 것이란 확신을 갖게 됐다. 장인(박태준 전 총리)께서도 오래전부터 중국의 성장에 주목하라고 하면서 동아시아를 타깃으로 한 비즈니스가 유망할 것이라고 조언해 주셨다.”

김 회장은 박태준 전 총리의 막내 사위다. 디자인 공부를 위해 뉴욕으로 유학 온 부인과 만나 91년 결혼했다. 김 회장은 한국에 들어온 뒤 매주 일요일이면 가족이 장인과 점심을 함께한다고 했다. 김 회장은 “2005년 MBK파트너스 설립 당시 고민이 컸던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싱가포르에서 자기 나라에 본사를 설치하면 ▶정부 관련 빌딩에 무료로 입주시켜 주고 ▶수억 달러의 공공자금을 유치해 주는 한편 ▶세금도 대폭 감면해 주겠다고 제의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럼에도 애국심 같은 게 발동해 서울로 마음을 굳혔다”면서 “한국이 진정 아시아의 금융 중심지로 도약하려 한다면 정부가 싱가포르 등과 경쟁할 실효성 있는 정책 패키지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여의도가 금융 중심지가 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목표라는 지적도 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한국계 금융 인재들이 부쩍 많이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 뉴욕과 홍콩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여건이 되면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 정부에서 멍석만 잘 깔아주면 이들이 들어와 뛰어놀게 될 것이다. 아울러 한국은 투자 위험에 비해 기대 수익이 높은 매력적인 시장이다.”

-사모펀드라는 게 뭔지 좀 생소하게 들리는 사람도 있을 듯 싶다.
국내외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의 돈을 대신 굴려준다. 국민연금과 군인공제회, 캐나다 공무원연금, 싱가포르 테마섹 같은 곳이 우리의 고객이다. 개인 돈은 받지 않는다. 모집된 자금에 차입금을 더해 기업을 인수한 뒤 기업가치를 높여 매각한다. 투자기간은 평균 4~6년으로 비교적 길게 잡고 있으며 목표수익률은 연 25~30%로 설정한다. 설립 후 펀드의 평가가치가 약 2배로 늘어났다.”

-한국의 금융산업이 시급히 고쳐야 할 병폐는.
모럴해저드가 여전히 심각하다. 상도의를 세우는 게 시급한 과제다. 예컨대 최근 금호아시아나 사태를 보면서 적잖이 실망했다. 대출 심사에 실패한 은행, 투자 위험을 알면서도 보장 수익에 안주한 재무적 투자자, 경영에 실패한 대주주, 그 누구도 응분의 책임을 지지 않았다. 산업은행 등 정부 소유 은행이 사태 해결의 책무를 떠안은 것은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막겠다는 발상과 다르지 않다. 이래서는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
김 회장은 한국 재벌의 기업지배구조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주식이 공개된 기업에서 별다른 검증 절차 없이 3세, 4세로 경영권을 승계하는 것은 한국 경제의 리스크를 높이는 요인이라고 꼬집었다.

박지성 선수가 잘했다고 그 아들에게도 국가대표 자격을 줄 수는 없는 것 아니냐. 21세기의 한 차원 높은 산업발전을 위해선 일상 경영은 과감하게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창업주 가족은 경영 전반을 모니터링하고 큰 전략을 짜는 데 주력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미래 성장동력은 어디서 찾아야 한다고 보나.
제조업의 성장을 발판 삼아 앞으로는 서비스업과 아이디어 비즈니스로 나아가야 한다. 미국 경제의 가장 큰 장점은 아이디어만 좋으면 얼마든지 돈을 끌어 쓸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금융 시스템의 낙후성이 여전하다. 서비스업의 활발한 창업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도 좀처럼 철폐되지 않고 있다. 이번 겨울올림픽에서 확인했듯이 한국민의 역동성은 대단하다. 환경만 잘 만들어 놓으면 서비스업에서도 창의적인 일자리가 많이 생길 것이다.”

-향후 글로벌 경제 흐름은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가.
“위기 상황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W형 회복세가 될 가능성이 크다. 각국의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투입이 한계에 부닥쳤지만 경제는 아직 자생력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도 국가부채가 너무 빠른 속도로 늘고 있어 불안하다. 중국이 결국 글로벌 경제의 회복을 견인할 것이지만 혼자 끌고 가기엔 아직 역부족이라고 본다.”

김 회장의 어릴 적 꿈은 금융 전문가와 전혀 다른 쪽이었다. 소설이 좋아 작가가 되고 싶었고, 한때는 영화감독과 야구 구단주를 꿈꾸기도 했다. 그래서 대학 학부에선 영문학을 전공했다. 그는 미 동부의 인문학 명문인 해버퍼드 칼리지를 졸업했고, 월스트리트의 골드먼삭스에 취직한 지 2년 뒤에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는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한 게 금융업의 복잡한 실타래를 푸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직원들을 뽑을 때도 전공을 전혀 따지지 않는다”고 했다. 김 회장은 2007년 본인의 사재로 MBK장학재단을 만들어 매년 10~20명의 저소득층 대학생들에게 학자금을 전액 지원해 주고 있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을 존경한다는 그는 은퇴 뒤에는 자선사업에 전념하며 자신의 재산을 모두 사회로 환원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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