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6.2013. 어떤 여자의 평범한 주말

새벽 4시까지 잠을 자지 않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잠자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이 규칙적이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새벽까지 깨어있던 적은, 밤 새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최근에는 MCSA를 했던 1년 외에는. A butterfly effect (2004)를 보고 잠이 잘 오지 않아서 송혜교, 조인성 주연의 드라마의 짤막한 영상들을 두 시간 가량 보다가 잠이 들었고, 그 덕에 아침 10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엄마와 산에 갈까 하다가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읽고 싶다는 충동에 롯데 백화점에 있는 영풍문고에 갔다. 개천을 따라 걷는데 햇살이 정말 좋았다. 광합성이 필요하다.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변하지? 겨울은 내가 의식이 있었던 약 20년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었다. 영하 30도를 경험했던 지지난 겨울도, 힘들고 지쳤던 기억의 지난 겨울도 나는 겨울이 좋았다. 그런데 이번 겨울 만큼은 어딘지 모르게 싫다. 날씨가 따뜻하니 아이들이 뛰어논다. 자잘한 남자아이들이 나뭇가지를 들고 놀이터 담을 넘나든다. 왜 여자아이는 없을까? 요새 집중하는 생각이라서 그런가.

아무튼 날씨가 좋았고 그래서 블로그를 시작하기로 한다.

간단하게 볼일을 보는데, 익명의 사람들 속에 섞인다는 게 편하다. 그저 걷는 것이 편했다. 마치 무슨 할 일이라도 있는듯이 걷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일일이 눈빛을 마주치거나 웃어보여야 하고 나는 그게 불편하다. 더군다나 백화점에서는… 친절하게 다가오는 미소를 무안하게 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난 돈도 없고, 내가 무엇을 살 거였다면 절대 발품 그 자체를 팔지 않아. 오래 생각하고 빨리 카드를 긁는다. ‘당신과 나는 상관이 없어요. 왜냐하면 나는 다른 무언가 중요한 게 있거든요.’하는 익명들 사이에 나도 그들 중 하나로 섞이는 것이 사람 많은 곳을 걷는 묘미랄까. 그런 점에서 나는 많은 여자들이 백화점에 가는 이유와는 다르지만 백화점을 좋아한다.

Jeanie Suk의 ‘A Light Side’의 한국판을 다 읽었다. 난 정작 한국판을 읽었는데, 한국 제목이 기억에 남지 않는다. 책은 매우 좋았다. 조만간 리뷰를 써야지 꼭. 이 외에도 ‘여자들은 어떻게 협상하는가’, ‘TED 프레젠테이션’ 등을 새롭게 봐두고 왔고, 지난번에 봤던 ‘한국의 헤지펀드 스토리’나 계속 보고 싶었던 카우치 서핑 관련 책은 읽지 못했다. 조지 소로스나 칼 포퍼에 혹은 데이빗 아인혼의 이야기도 읽고 싶은데.

영풍문고의 책 읽는 의자는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에스컬레이터와 마주하고 있다. 책을 읽는 나는 쇼 윈도에 전시 된 책 읽는 사람이 된다. 좋은 광고 효과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나를 한참동안 쳐다보았다. 고개를 쳐박고 책을 읽다가 갑자기 왜 고개를 들어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는지 모르겠지만.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신기하게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눈이 마주치면 시선을 바로 거두는 것이 보통인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모르는 사람들 간에는 다소 무례하게 느껴질만큼의 딜레이가 있었다. 왜 그랬을까.

배가 고파서 집에 왔다. 걸어오려고 했는데 날씨가 추워서 버스를 탔다.

어딘가 떠나고 싶고 즐거운 주말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요새 자꾸 드는데, 가족들도 내가 짐처럼 느껴지겠지 싶던 차에… 나만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을 찾은 것 같아 기쁘다.
애인이 없는 어떤 여자의 평범한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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